보통 직장에서 회의를 한다고 하면 벌써부터 하품이 나온다. 일 얘기를 하는 것도 싫은데, 다들 자기가 할 말만 하고 남이 얘기할 때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등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회의 시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하품의 간격은 줄어들고, 애초에 왜 이 회의가 시작되었는지 목적조차 까먹곤 한다. 시간이 더 길어지면 다들 싫어할 것을 아니까, “다음에 논의하시죠”라는 말로 급히 마무리하면서 다시 책상에 돌아와 앉는다. 무엇을 얘기했는지, 그래서 무엇을 하기로 한건지, 머릿속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비효율: 습관적인 회의 “일단 모이고 보자!”
  • 불통: 답정너 리더, 말이 없는 참여자들
  • 무성과: 답, 결론, 실행이 없는 회의

이 고통스러운 회의 시간을 즐겁게 만들 순 없을까? 끝나고 나면 머릿속에 뭔가가 명확히 남는 의미있는 회의를 할 순 없을까? 이 고민은 퍼실리테이션 (Facilitation)이라는 방법을 통해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다.

1. 퍼실리테이션의 정의 및 개념

퍼실리테이션이라는 것은 집단의 공동의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도록 도구와 기법을 활용하여 절차를 설계하고 중립적인 태도로 진행과정을 돕는 활동을 일컫는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재미있고 효율적인 도구와 기법들을 사용해서 회의 진행을 돕는 사람을 퍼실리테이터 (Facilitator)라고 한다. 쉽게 생각해보면 MC 혹은 레크레이션 (Recreation) 강사와 유사하다.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을 세부적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고객 이해와 협력적 관계 형성
원활한 파트너십 형성
워크숍의 내용, 결과물, 역할과 책임에 대한 합의
환경과 요구에 대한 정확한 이해
회의 진행 방법 설계
목적 달성에 필요한 방법과 진행 절차의 설계
주제 및 참여자에게 적절한 방법 선정
진행에 필요한 적절한 시간과 공간의 확보
참여 환경 조성 및 유지
효과적 참여를 위한 의사소통의 기술 활용
다양성 존중과 개방적 환경의 조성
그룹의 창의적 사고 촉진 및 갈등 관리
그룹의 참여를 위한 지원 및 자기 인식 촉진
적절하고 유용한 결과물 도출
합의 및 기대한 결과물 달성을 위한 지원
적절한 방법으로 절차 관리 및 단계별 산출물 도출

2. 퍼실리테이션의 네 가지 기둥

  • 철학 (신뢰, 중립성, 진정성)
  • 절차
  • 기술 (QLES)
  • 도구

2-1. 철학

퍼실리테이터는 참여자들을 대하는 과정에서 진정성을 바탕으로 신뢰감을 주면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 이중 핵심 키워드는 바로 “중립”이다. TV쇼를 진행하는 유능한 MC들은 본인이 주도권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이끌어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특징을 발견해내고 그들이 충분히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유도해서 프로그램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드는 감초 역할을 할 뿐이다. 퍼실리테이션은 기본적으로 “모든 의견은 동등하게 귀중하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퍼실리테이터 본인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참견이나 발언은 최대한 지양하고,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면서, 모든 의견을 효과적으로 취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구성원들간의 갈등을 중재해야 한다.

2-2. 절차

퍼실리테이션 활동을 포함한 회의의 전체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회의 요청/발의
  2. 인터뷰 및 분석
  3. 목적/결과물 합의
  4. 진행과정 설계
  5. 회의 준비
  6. 회의 진행
  7. 회의 평가

회의는 전체 과정의 20 ~ 30%밖에 되지 않는다. 회의 시작 전 회의 참여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회의를 설계하는 단계의 비중이 약 70 ~ 80% 되어야 한다. 인터뷰 과정에서는 회의 참여자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하여 회의의 목적과 결과물을 명확히 해야 한다. 결과물의 경우 단순한 side effect 말고, 회의 자체의 구체적인 결과물이어야 한다. 클라이언트를 진짜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인터뷰에 임하되, 취조하듯이 진행하면 안된다.

목적과 결과물을 명확히 했다면, 타임라인을 만들어서 어떤 논의를 진행할 것인지, 그리고 후에 설명할 여러 도구들 중 어떤 것을 활용하여 참여자들의 흥미를 돋구고 참여를 유도할지 상세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처음 회의를 시작할 때 바로 딱딱하게 시작하는 것보다는 간단한 ice breaking 활동을 포함하면 훨씬 구성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데 효과적이다. 그 이후에는 회의의 목적에 대하여 구성원들의 인식을 조사하기 위해 포스트잇을 활용하여 다양한 의견을 브레인스토밍해보는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

상세한 타임라인 계획을 완료했다면, 중재자로서 중립을 지키며 회의에 참여한 뒤, 회의가 끝나고 여러 피드백을 수렴하여 다음 회의 때 반영하면 된다.

2-3. 기술

퍼실리테이터가 사용하는 기술은 다음과 같이 크게 Q, L, E, S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 질문 기술 (Questioning): 구성원들의 생각을 확산, 정리, 탐색, 수렴하는 것을 도울 수 있도록 효과적인 질문을 만들고 던지는 기술
  • 경청 기술 (Listening): 구성원들의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고, 몸짓과 표정이 전하는 의미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서 정확한 정보를 구하는 기술
  • 기운 기술 (Energizing): 구성원들의 발언과 활동에 가치를 부여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조성하여 높은 수준의 참여 에너지를 유지하는 기술
  • 기록 기술 (Scribing): 논의되고 있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정리하고 시각화하여 구성원이 필요시 항상 조회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2-3-1. 질문 기술

효과적인 질문을 만들고 던지는 기술을 의미한다. 질문이라는 것은 “정보처리 + 정서처리”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한 행위이다.

questioning

우선 정보처리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A가 B에게 질문을 하는 행위는 B로부터 정보와 답을 얻을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다음 그림처럼 질문에 답을 실어보내면 흔히 말하는 “답정너”가 된다.

messaging

판단이나 의견을 담아 보내는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메시징이다. 이러한 메시징은 보통 상호 소통을 저해하는 요인이며, 심한 경우에는 갈등을 초래한다. 따라서, 질문자들이 최대한 판단, 의견을 배제하고 정보와 답을 얻기 위한 실질적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다음의 소크라테스 질문 유형 6가지를 참고하여, 구성원들이 효과적인 질의응답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자.

  • 명확화를 위한 질문
  • 관점이나 전망에 관한 질문
  • 가정을 탐색하는 질문
  • 추론과 결과를 탐색하는 질문
  • 이유와 증거를 탐색하는 질문
  • 질문에 대한 질문

그런데, 종종 질문의 내용을 고려하기도 전에, 구성원들이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 분위기의 회의가 많다. 이런 경우는 보통 심리적 안전감이 부재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것은 내가 특정 발언을 하더라도 불이익을 받거나, 피해를 끼치는 등의 악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발언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조직들은 보통 회의 때 구성원들의 참여도가 높으며, 그만큼 유의미한 결과물을 도출할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퍼실리테이터는 이런 심리적 안전감을 구성원들이 느낄 수 있도록 문화를 잘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

2-3-2. 경청 기술

경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입만 아프다. 질문도 결국엔 경청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경청이라는 행위는 상호 협력이 발생하는 출발점이다. 그런데, 보통은 본인이 경청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경청을 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경청의 정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5단계 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

  • 1단계: 발언 기회 포착
  • 2단계: 경험담 제시 기회 포착
  • 3단계: 조언 기회 포착
  • 4단계: 추가적인 정보의 탐색
  • 5단계: 속마음 이해 (진의 파악)

이 5단계중 1 ~ 3단계는 사실 경청이 아니라, 경청을 하는 척하면서 딴청을 부리는 것에 가깝다. 진정한 의미의 경청이란 상대방의 발언에 담겨 있는 추가적인 정보와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집중하여 진정성을 바탕으로 임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경청이 능사가 아닌 경우가 있다. 회의 중에 비판적인 의견만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모든 의견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회의 진행 자체의 의미가 없음을 강조한다. 이런 경우는 무작정 경청만 한다면 회의에 참여중인 다른 구성원들도 피곤해진다. 따라서, 퍼실리테이터가 잘 중재해야 한다.

무턱대고 발언권을 박탈한다면, 그 순간부터 해당 발언자의 불만은 폭발하게 된다.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경청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팔짱을 끼고 뒤로 몸을 젖혀서 비관론을 고수하는 사람은 실제로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잘 경청을 해보면, 본인의 지식의 범위나 깊이가 다른 구성원들보다 우월하거나, 이미 본인이 경험했거나 시뮬레이션을 마쳤기에 상황 및 사안들을 그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해당 사람 입장에서는 회의에서 핵심적으로 다루어야 할 내용이 A인데, 직접적 관련이 상대적으로 덜한 B에 대해서만 얘기하면서 시간을 쏟고 있으니 답답하게 느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해본 뒤 “선생님이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은 A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매우 중요한 사안 같은데 제가 메모해둔 뒤에 B에 대한 얘기가 끝나고 나서 A에 대해 깊이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 어떠신가요?”라고 말해보자.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라는 대답과 함께 B에 대한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퍼실리테이터는 낙오자 없이 모두가 회의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경청 기술이다.

2-3-3. 기운 기술

기운 기술은 구성원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들과 관련이 있다. 모든 사람은 원인 행위자가 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집단 활동에서 자유와 선택권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집단의 행동에 주인 의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면, 일종의 retention 효과로 인재들이 더 머물고 싶다고 느끼게 된다. 따라서,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고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회의나 워크샵에서는 전체 큰 규모의 인원 전체가 동시에 소통하는 것보다는 소그룹으로 나누어서 논의를 진행하고, 최종적으로 취합하는 형태가 효과적이다. 소그룹 하나에 4명 정도 참여시키는 것이 좋은데, 그룹 다이나믹스를 고려해서 6명 정도면 적당하다고 본다. 이외에도 참여 에너지를 촉진할 수 있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 가치의 제공
  • 결정권 부여
  • 쾌적한 환경 (e.g. 천장 2.5m 이상 높이의 공간)
  • 유머와 놀이 (e.g. 비핵심이므로 전체 과정의 5%가 넘지 않게 진행)
  • 효과적 진행

퍼실리테이터는 이 다섯 가지를 잘 고려하여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극대화할 수 있는 회의를 설계하고 진행해야 한다.

2-3-4. 기록 기술

기록 기술은 잘 활용하면 앞선 3개의 기술을 자연스럽게 포함하게 된다. 기록은 경청의 증거를 나타낸다. 구성원들의 의견이 회의에 반영되고 있음을 인지시킴으로써 참여의 에너지도 촉진하게 된다. 기록 과정에서 내용이 너무 길면 가독성 향상을 위해 키워드로 패러프레이징 해두는 것이 효과적이다. 단, 진행자가 판단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면 안된다.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만 매우 중요하다. 기록물은 회의 진행 중에도 흐름을 놓치지 않게 해주며, 시각적으로 잘 패러프레이징 되어 있다면 구성원들의 아이디어를 촉진시켜주는 역할도 수행한다. 또한 회의가 끝난 후에도 결과를 정리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퍼실리테이터는 회의 과정에서 떠다니는 여러 의견들을 경청을 통해 중립적으로 잘 기록할 의무가 있다.

2-4. 도구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효과적으로 도출 및 정리하고, 재미 요소를 가미하여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이 존재한다. 퍼실리테이션 툴킷 (Facilitation Toolkit)을 검색해보면 수많은 종류의 도구들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인드맵, 육감도 등 아이디어의 표출 및 발산을 돕는 도구들, T, Y, 4분면 차트, 연관도, 절차도 등 아이디어의 정렬을 도와주는 도구들, 상과노력대비표, 의사결정표 등 의견을 수렴하고 평가 및 결정을 도와주는 도구들 등 수도 없이 많다.

모든 툴에 대한 내용을 다루기에는 지면도 부족하고 사실 큰 의미도 없다. 회의의 모든 진행 단계에 이런 도구들을 활용할 순 있겠지만, 때로는 도구 없이 단순 의견을 나누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잦은 도구의 남용은 오히려 비효율을 낳는다. 따라서 몇 가지 필살기들만 익혀두고 적재적소에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하자. 실용적으로 사용해볼 만 한 여러 방법들은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보통 포스트잇을 활용하여 의견을 수렴한다는 정도만 알고 넘어가도록 하자.

3. 퍼실리테이션을 적용하면 좋은 회의와 사례들

퍼실리테이션 과정이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간단히 의견을 짧게 나누는데 퍼실리테이션을 한다면서 도구를 들이대고 이상한 활동을 강요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구성원들이 부담을 느끼고 피곤해진다. 따라서, 퍼실리테이션은 다음과 같은 회의에서만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 결론이 정해지지 않는 회의: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론을 내려야 하는 회의
  • 구성원들의 결정권이 있는 회의: 구성원들의 의견이 최종 결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회의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퍼실리테이션을 적용한다고 해도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할 때
  • 합의에 의하여 결정하고자 할 때
  •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
  •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할 때
  • 실행에 구성원의 협력이 필요할 때
  • 학습과정에 참여와 주동성을 높일 때

퍼실리테이션은 실제로 이슈 발굴, 브랜드 개발, 정책 방향 수립 등 다양한 사안에 활용할 수 있다. 업무 관점에서 여러 사례들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 신제품 개발, 정책 개발, 새로운 서비스 개발, 신기술 개발, 새로운 디자인 개발, 성과 평가 방법의 개발, KPI 개발
  • 비전 만들기, 미션 만들기, 전략 도출, 마케팅 전략 수립, 슬로건 핵심 가치 도출, 과제 도출
  • 업무 분장, 문제 해결
  • 부서간 갈등 해결, 집단 민원 또는 분쟁 해결

4. References

KOO Facilitation 상표등록 제40-1392760호

https://ezinearticles.com/?The-Five-Levels-of-Listening&id=5115474

FacilitatorToolKit.pdf

https://www.unl.edu/gradstudies/connections/socratic-questi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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